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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법 걱정과 불안의 문제 노진준 목사 ①

by 오, Refrigerium 2023. 4. 6.

우리는 왜 신앙이 있는데도 늘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는 밤을 보내고 있는 걸까요? 예수님께서도 분명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과연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이 인생의 숙제를 잘잘법을 통해 순회설교자 노진준 목사의 의견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잘잘법_ 노진준 목사_걱정과 불안
잘잘법 ep.121_노진준 목사

 

걱정과 불안의 문제 앞에 선 신앙인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애쓰는 사람일수록 살면서 불안이나 걱정, 근심이 생기면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걱정과 불안 앞에서 걱정하는 게 과연 믿음을 가진 사람의 태도일까?' 아마도 자신이 믿음이 부족하거나 제대로 믿고 있지 않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때때로 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죠. 그렇다면 신앙인이 이렇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가지고 염려라는 행위 자체를 해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염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주님께 맡겨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성경을 보면서 비결을 찾고 싶어 하지는 않나요? 삶의 노하우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혹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다 채워주신다고 하셨으니까 아무 문제가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염려하지 않는 게 걱정과 불안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문제 해법의 덫

어떤 문제 앞에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떠올리진 않으십니까? 이것을 떠올리는 이유 역시 여리고성이 무너진 노하우를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여리고성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지게 되었고 이 사건을 통해 순종을 요구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기보다는 성공한 노하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행상을 하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꿈을 어렵게 모든 돈으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회 부흥회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셋방살이를 하시는데 교인들은 좋은 집에 삽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면 다 이루어질 텐데 세상일로 염려하기 때문에 삶이 지지부진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모아둔 모든 돈을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이런 삶의 간증을 들으면 어떤 결말을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무상으로 가게 터를 갖게 해 주셨다던가,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등의 드라마틱한 반전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공식화의 문제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또한 성과 속을 구분하려는 이원화의 문제에도 노출되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삶의 방식

주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우리가 살면서 염려를 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나요? 반대로 염려를 하지 않고 사는 삶은 오히려 태만하거나 무책임한 삶은 아닐까요? 예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길쌈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지키신다(마 6: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삶의 방식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염려도 하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태만함이나 무책임함을 권장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하는 예수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는 마태복음 6장의 맥락을 키워드 삼아 해석해야 합니다. 곧 외식과 관련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노진준 목사가 잘잘법을 통해 내린 걸론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잊지 말아야 한다'입니다.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마태복음 6장에 대한 해석이 이어집니다. 그 양이 방대하여 이 내용은 다음 글을 통해 정리해 보도로 하겠습니다. 자, 그럼 그때까지 우리 모두 잘 믿고 잘살아 봅시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염려를 내려놓은 연습을 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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